제목 [이재국의 야구여행]김헌곤의 역주행과 이학주의 추월, 무엇이 문제였나..야구규칙 재구성
등록일 2021.04.04 23:31
글쓴이 방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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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김헌곤과 이학주가 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개막전 6회초 동시에 아웃 판정을 받은 뒤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야구의 정석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개막전. 6회초에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나왔다. 이는 이날 승부의 분수령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승부를 떠나 알쏭달쏭한 야구규칙과 신설된 비디오판독 항목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교재가 됐다. 야구규칙과 몇 가지 가정법을 놓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본다.

◆ 김헌곤의 역주행과 이학주의 선행주자 추월

삼성이 0-2로 뒤진 6회초, 김헌곤이 우전 안타를 치고 출루했다. 무사 1루. 이학주가 왼쪽 펜스로 날아가는 큼지막한 타구를 만들었다. 이때 키움 좌익수 이용규가 타구를 쫓아 점프 캐치를 시도했다. 언뜻 보기엔 공이 곧바로 글러브에 들어간 듯했다. 그러나 멀리서 타자와 주자가 직접 포구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앞서 이날 3루심을 맡은 김성철 심판위원은 ‘매의 눈’으로 지켜보다 팔을 양 옆으로 벌렸지만, 타구의 궤적만 바라보다 3루심의 판정 시그널을 보지 못한 김헌곤은 2루를 돌아 3루를 향해 달리다 다시 2루를 거쳐 1루로 돌아갔다. 이용규가 직접 포구를 했다고 판단한 것. 이학주는 2루타성 타구로 생각해 1루를 돌아 2루를 향하다 김헌곤이 필사적으로 역주행하는 것을 보고는 1루와 2루 사이에 얼어붙어 버렸다. 김헌곤은 이학주를 지나쳐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갔다.

수비 쪽을 보면, 이용규의 송구는 몇 차례 바운드를 일으키며 내야로 굴러 오다시피 했다. 2루수 서건창이 이를 잡아 2루를 밟은 뒤 1루로 던졌다. 서건창의 1루 송구가 1루수 박병호 미트에 들어가는 시점보다 김헌곤의 손이 1루에 더 빨리 도달했다.

타자 이학주는 아웃, 김헌곤은 1루에 살아 1사 1루 상황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중계된 느린 화면으로 확인한 결과 3루심의 판정대로 타구가 펜스에 먼저 살짝 닿으면서 이용규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 삼성 허삼영 감독(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최태원 수석코치(오른쪽)가 심판들에게 6회초 병살 상황에 대해 어필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 심판은 왜?

심판진은 곧바로 김헌곤과 이학주 모두 아웃을 선언했다. 공식기록 상으로는 수비측의 병살(더블플레이)이 1개 추가됐다('더블아웃'은 야구사전에 없는 용어이며, 공격측에 '병살타'가 주어지는 상황은 아니다).

최수원 주심은 마이크를 잡고 상황 설명을 했다.

“외야로 나간 타구를 3루심이 노캐치 선언을 했는데, 2루에서 포스아웃 상태가 돼 1루주자는 2루에서 아웃입니다. 타자주자는 1루를 밟고 주루를 포기해서 (더그아웃을 향해) 들어간 상황이라 타자주자와 1루주자가 다 아웃입니다.”

타구가 펜스에 먼저 맞았다면 볼 인플레이 상황. 타자주자를 위해 1루를 비워줘야 할 의무가 있는 김헌곤이 2루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서건창이 공을 갖고 2루를 밟는 순간 2루에서 포스아웃으로 처리됐다는 의미였다. 야구규칙 5.09 (b)주자아웃 ⑥항을 보면 '타자가 주자가 됨에 따라 진루할 의무가 생긴 주자가 다음 베이스에 도달하기 전에 야수가 그 주자나 베이스에 태그하였을 경우(이것은 포스아웃이다)'라고 설명돼 있다.

이학주는 말 그대로 주루를 포기했다. 야구규칙 5.09 (b)주자아웃 ②항을 보면 '1루를 밟은 후 베이스 라인에서 벗어나 다음 베이스로 가려고 하는 의사를 명백히 포기하였을 경우'를 설명해 놓고 있는데 이를 적용한 것이었다.

삼성 허삼영 감독이 나와 항의를 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펜스에 먼저 타구가 닿는 바람에 판정을 뒤집을 근거는 없었다.

▲ 2루수 서건창이 2루를 밟는 시점과 이학주 김헌곤의 교차 시점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다시 돌려보기를 해도 김헌곤이 역주할 때 1~2루 사이에 서 있는 이학주를 지나치는 시점이 빨라 보이기도 한다. ⓒMBC 중계화면 캡처

◆ 그렇다면 '2루 포스아웃’이 빨랐을까, ‘선행주자 추월’이 빨랐을까?

여기서 조금 더 상황을 깊이 들여다 본 팬들이라면 궁금증 하나가 생길 수 있다. 2루수 서건창이 이용규의 송구를 잡아 2루를 밟는 시점, 이학주와 김헌곤이 1~2루 사이에서 겹치는 시점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부분이다. 만약 이학주의 선행주자 추월이 먼저 이뤄졌다면 이날 판정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야구규칙 5.09 (b)주자아웃 ⑨항을 보면 '후위주자가 아웃되지 않은 선행주자를 앞질렀을 경우 후위주자가 아웃된다'고 돼 있다. [주2]에는 “‘갑’이라는 2루주자, ‘을’이라는 1루주자가 있다고 할 때 을이 갑을 추월하였을 때는 물론, 역주할 필요가 있을 때 갑이 을을 추월하더라도 항상 후위의 을이 아웃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건창이 2루를 밟는 시점보다 김헌곤과 이학주의 1~2루 사이에서 겹치는 시점이 앞섰다면 이학주가 선행주자 추월로 먼저 아웃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김헌곤도 포스아웃 상황이 해제되기 때문에 타자주자에게 1루를 비워줄 의무가 없게 된다. 반드시 2루로 진루해야할 의무가 없어졌기 때문에 1루에 돌아가 그대로 살 수 있었던 상황이다.

중계 화면으로는 서건창의 왼발이 2루를 밟는 시점이 먼저인지, 선행주자 추월 시점이 먼저인지 분간하기는 어렵다. 보기에 따라 선후를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한 시간차였다. 느린 화면으로 초정밀 판정을 해야만 알까말까 한 장면이었지만, 이날 경기를 중계한 MBC 화면은 이 부분은 느린 그림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만약 애초에 심판이 주자가 겹치는 추월 상황이 더 빨랐다고 판단했다면 이학주는 아웃, 김헌곤은 1루에서 세이프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 삼성은 비디오판독을 요청할 수 없었나?

그렇다면 삼성은 이 장면을 두고 비디오판독을 요청할 수 없었을까. 2루수가 2루를 밟는 장면보다 선행주자 추월이 먼저 이뤄졌다고 보면 1사 1루에서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KBO가 올 시즌을 앞두고 확대하기로 한 비디오판독 대상 4가지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공식야구규칙 5.08(a)에 의거한 3아웃 이전 주자의 득점 ②주자의 누의공과 ③주자의 선행주자 추월 ④주자가 다음 베이스로 진루하기 위해 태그업할 때 일찍 했는지에 대한 심판의 판정.

눈에 띄는 것은 ‘선행주자 추월’ 여부에 대해 비디오판독을 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동안 2개의 장면을 카메라가 동시에 잡기 힘들 수도 있다는 이유로 빠져 있던 ‘3아웃 시점’과 ‘주자의 득점 시점’도 판독 가능하게 됐다. ‘야수의 포구 시점’과 ‘태그업 시점’ 비교도 포함하기로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성은 이날 비디오판독 요청을 할 수 없었다. 비디오판독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호인 비디오판독센터장은 이날 경기 후 전화통화에서 “선행주자 추월 여부는 비디오판독 확대 대상에 포함되지만, 2루 포스아웃 시점과 선행주자 추월 시점을 동시에 비교하는 것은 이번 비디오판독 확대 항목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도 1987년부터 심판 생활을 하면서 별의 별 상황을 다 겪어봤지만 오늘 같은 상황을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심판들이 오늘 상황은 깔끔하게 잘 판단해서 정리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 설사 이 장면이 비디오판독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실행되기는 어려웠다. 판독 요청은 해당 플레이의 최초 판정 후 이닝 도중에는 30초, 이닝 종료 시에는 10초 이내에 신청 의사를 내비쳐야 하는 데 이미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 삼성 이학주 ⓒ곽혜미 기자

◆ 삼성의 치명적 실수들

이날 김성철 3루심의 판정이 신속하게 이뤄졌고, 양 팔을 벌리는 판정 동작도 명확했다. 타구의 궤적과 포구에만 시선이 간 삼성 코치들과 선수들의 실수였다.

1차적으로는 선수가 심판 판정을 보고 플레이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이를 놓쳤다면 코치들이 김헌곤에게 2루로 다시 뛰게 하거나 이학주를 1루로 돌아오게 하는 시그널을 줬어야 했다. 김헌곤과 이학주가 1루를 함께 밟고 있었다면 둘 다 1루수 박병호에게 태그되더라도 야구규칙상 1루를 비워줘야 하는 김헌곤만 아웃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2루수 서건창이 2루를 밟고 1루로 공을 던졌다면, 주자 이학주는 그 순간 다시 2루로 달려볼 필요가 있었다. 타이밍상 1루수가 2루에 공을 던져 이학주를 아웃시킬 가능성이 컸지만 수비 실책이 나올 수도 있고, 런다운에 걸려 상대 실수를 유발할 수도 있다. 상황 판단이 빨랐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볼 여지는 있었다.

그나저나 이날 가장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3루심 김성철 심판위원의 '매의 눈'이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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