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민기자 MLB리포트]퍼펙트게임과 렁기 일가에 얽힌 숙명
등록일 2012.06.15 00:00
글쓴이 방병수
조회 496
브라이언 렁기 심판은 1970년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배번 18번을 단 렁기는 1999년 내셔널리그 심판으로 MLB에 데뷔해 2000년부터는 심판의 리그가 통폐합되며 양쪽 리그에서 모두 심판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과 2007년에는 AL 디비전 시리즈 심판을 맡기도 한 중견 심판입니다. 브라이언 렁기는 또한 메이저리그에서 진기록을 이룬 가족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버지 폴 렁기도 MLB의 심판으로 1973년부터 1997년까지 NL 심판으로 일했습니다.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야구 선수를 한 폴 렁기는 마이너에서 잠깐 뛰다가 심판으로 변신, 1965년부터 마이너리그에서 심판을 시작했습니다. 8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심판 수련을 거친 끝에 1973년 마침내 메이저리그 심판이 됐습니다. 폴은 4차례의 월드시리즈와 3번의 올스타전, 그리고 9번의 리그챔피언십에서 심판에 배정된 당대 최고의 그라운드의 파수꾼이었습니다. 가장 정확하고 신뢰를 주는 심판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 > < 3대가 MLB의 심판으로 활약한 브라이언, 폴, 에드 렁기는 총 8번의 노히트 경기에 심판으로 참여했습니다. > 그런데 브라이언 렁기의 아버지인 폴 렁기의 아버지, 즉 브라이언의 할아버지 에드워드 렁기도 MLB의 심판이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1918년 뉴욕 주 버팔로에서 태어난 에드 렁기는 1947년 마이너리그인 텍사스의 빅스테이트리그에서 처음 심판을 시작했습니다. 1949년에 트리플A인 퍼시픽 코스트리그로 승격되더니 1954년부터 정식으로 MLB의 아메리칸리그에서 심판으로 일했습니다. 에드 렁기는 3번의 월드시리즈와 5번의 올스타전 심판으로 배정되며 활약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렁기는 배번 17번을 달았습니다. 1973년 에드 렁기의 아들 폴 렁기가 MLB 심판이 되면서 빅리그 최초의 \'부자(父子) 심판\'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브라이언도 빅리그 심판이 되면서 렁기家의 세 남자는 MLB 사상 최초로 3대가 심판으로 활약하는 대기록을 이룬 가족이 됐습니다. 할아버지 에드 렁기는 손자 브라이언 렁기가 MLB 심판이 돼 활약하는 것을 지켜본 후 2002년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브라이언 렁기는 퍼펙트게임, 노히트노런과 얽힌 인연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렁기는 지난 4월 21일(이하 미국시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발 필립 엄버가 시애틀 세이프코필드에서 MLB 사상 21번째 퍼펙트게임을 이뤘을 때 \'홈플레이드 엄파이어(구심)\'를 보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심판 생활을 아무리 오래해도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의 구심을 본다는 것은 보통 행운과 인연이 아닙니다. 140년에 이르는 MLB 역사상 딱 21번밖에 나오지 않은 퍼펙트게임의 구심을 봤으니 브라이언 렁기에게는 큰 영광과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브라이언 렁기는 또한, 지난 2009년 7월 10일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좌완 조너선 산체스의 노히트 노런 경기 때도 구심을 본 인연으로 또 화제가 됐습니다. 산체스는 당시 경기 후반 3루수 유리베의 실책으로 아깝게 퍼펙트게임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기 마지막 삼진을 잡는 순간 렁기 심판이 힘차게 스트라이크를 외친 공이 실은 볼이 아니었느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렁기의 노히트와의 인연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6월 8일 시애틀과 LA 다저스의 인터리그 경기를 앞두고 매리너스 척 암스트롱 사장은 렁기를 포함한 심판진을 만나자 \'퍼펙트게임 심판진!\'이라고 외치며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고 합니다. 물론 지난 4월 렁기가 구심을 봤던 화이트삭스전을 떠올리며 한 이야기였는데, 그날 세이프코필드에서는 또 한 번의 극적인 노히트 경기가 펼쳐집니다. 선발 케빈 밀우드가 6회까지 노히트를 하다가 부상으로 물러났는데 5명의 구원 투수가 이어 던지며 합작 노히트노런을 이뤄낸 것입니다. 그날 구심도 바로 브라이언 렁기였습니다. 이로서 렁기는 통산 세 번째 노히트 경기와 함께 같은 시즌에 두 번이나 노히트 경기의 구심을 맡은 MLB 역대 10번째 심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퍼펙트게임도 넓은 의미에서는 노히트 노런이지요.) 그런데 브라이언 렁기의 노히트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렁기가 속한 심판진은 6월13일(한국시간 14일 목요일) 샌프란시스코의 AT & T 파크에서 벌어진 자이언츠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 배정됐는데 자이언츠 우완 맷 케인이 MLB 사상 22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것입니다. 렁기는 이번에는 구심이 아닌 3루심으로 이 역사적인 경기에 일부가 됐습니다. < 브라이언 렁키(자신 좌에서 두번째, 18번)가 속한 심판진은 올해 3번의 노히트 경기를 맡았는데 그 중에 두 번을 렁기가 구심을 봤습니다. > 브라이언 렁기와 노히트 내지는 퍼펙트와의 인연이 이 정도가 되니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기록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숙명적인 노히트와의 인연이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할아버지 에드 렁기는 1956년 단 라슨이 전대미문의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을 때 심판진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리고 1965년 9월 데이브 모어헤드가 노히트를 달성했을 때 구심을 봤습니다. 아버지 폴 렁기는 1981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챨리 리가 4-0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을 때 구심이었습니다. 몬트리올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노히트 경기였습니다. 1986년 9월 25일 마이크 슈미트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지구 우승을 확정짓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을 때 폴 렁기는 1루심을 봤고, 1998년 9월 28일 오렐 허샤이저가 MLB 최다인 59이닝 무실점 기록을 세울 때 구심을 보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손자까지 3대에 걸쳐 MLB 심판을 보면서 렁기 심판진은 총 5번의 노히트 경기에서 직접 구심을 봤고 또 다른 3번의 노히트 경기에는 루심으로 참여했습니다. 총 8번의 노히트 내지 퍼펙트게임에 직접 심판으로 참여하는 진기록을 이뤄낸 것입니다. 프로야구도 30년이 넘는 역사가 쌓이면서 각종 기록과 함께 조만간 부자(父子) 심판의 탄생도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심판을 지낸 황석중 심판과 김준표 심판의 아들인 황인태 심판과 김익수 심판이 현재 2군에서 기량을 갈고 닦고 있습니다. 한국프로야구의 2대에 걸친 심판 탄생도 멀지 않았습니다.

댓글

  • 김성환 (2012.06.15 00:00)
  • 존경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부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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