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휴가 반납하고 스트라이크존 훈련 나선 심판들.."비정상의 정상화" [스경X현장]
등록일 2022.01.11 23:31
글쓴이 방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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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김경학 기자 입력 2022. 01. 11. 16:54 수정 2022. 01. 11. 18:56 

1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KBO 심판들이 스트라이크존 훈련을 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11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 그라운드에 선수들은 없고, 심판들만 가득했다. 타자도 심판, 포수도 심판, 마운드에 세운 피칭 머신에 공을 넣는 이도 모두 검은 심판복을 입고 있었다.

홈 플레이트 위에는 ‘줄’로 만든 스트라이크 존이 있었다. 방송 중계화면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보여주던 스트라이크 존을 실제 만들어놓은 것이다.

피칭 머신에서 나온 공은 투구 궤적 추적 시스템을 통해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이뤄졌다. 판정은 한 박자 늦게 나왔다.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라는 기계음이 나왔고, 볼은 버저 같은 짧은 소리가 났다.

“(스트라이크존이) 좀 타이트했던 사람 나와봐”. 한 심판이 포수 뒤에 들어섰다. “원래 보던 스트라이크존으로 판정해봐”.

나머지 심판들은 반원으로 홈 근처를 에워싸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피칭 머신에서 나온 공이 스트라이크존 위를 살짝 걸치며 포수 미트에 들어갔다. 볼로 판단한 심판은 가만히 있었다. 잠깐 뒤 기계음이 났다. “스·트·라·이·크”.

KBO는 2022시즌부터 스트라이크존을 넓힌다고 밝혔다. 이날은 달라진 스트라이크존을 눈이 익히기 위해 KBO리그 1·2군 심판 54명 전원이 첫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KBO 심판들에게 평소 1월은 쉬는 달이다. 훈련을 하더라도 타구 방향에 따른 자리 이동 같은 움직임을 훈련하기는 하지만, 스트라이크 판정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눈’을 훈련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판들이 휴가까지 반납하고 1월에 모두 모여 훈련하는 경우는 프로야구 출범 이래 40년 만에 처음이다.

1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KBO 심판들이 스트라이크존 훈련을 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KBO가 이렇게까지 의지를 가지고 스트라이크존을 변화시키려는 건 위기 의식 때문이다. 단초가 된 건 지난해 2020 도코 올림픽 ‘노메달’이었다. 선수들은 국내와 다른 스트라이크존에 당황하고 항의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이같은 취지 때문일까. 이날 심판들 사이에선 다소 불만 섞인 푸념도 나왔다. 한 심판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국제대회에 나오는 심판 대부분은 본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 심판들”이라며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잘 내려고 프로야구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KBO 야구 규정



그러나 KBO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규정과 달리 너무 좁아진 스트라이크존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운 KBO 심판위원장은 국내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진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볼 판정 항의에 관대한 야구 문화’다. 허 위원장은 “선수가 볼 판정에 불만을 가지고 심판을 쳐다보기만 해도 퇴장시키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우선 경기를 매끄럽게 진행하려는 취지에서 좋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높은 공에 대해서는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워낙 예민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좁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인사 평가 제도’였다. 매 경기가 끝나면 심판들은 7가지 지표로 자신의 판정을 수치로 평가받는다. 중요한 항목 중 하나가 ‘일관성’인데, 일관성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선 스트라이크존이 좁은 것이 유리하다보니 비정상적으로 좁아졌다는 설명이다. 허 위원장은 “이번 스트라이크존 변화와 함께 심판 평가 제도도 수정했다. 심판들에게 더 많은 권한과 자율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KBO가 스트라이크존 변화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매번 구단과 팬들의 반발에 막혀 자리잡지는 못했다. 허 위원장은 “타자들도 타격 자세를 바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심판들에게도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스트라이크존 정상화를 위해 선수와 코칭스태프, 팬들 모두 협조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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