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한 MK스포츠 기자(forevertoss@maekyung.com)입력 2024. 4. 15. 01:12
마치 스포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작당모의 장면이 KBO리그에서 현실로 나왔다. 4월 14일 대구에서 열린 KBO리그 경기에서 ABS(자동 투구 판정시스템)가 스트라이크로 판정한 공을 볼로 오심한 심판진이 자신들의 실수를 은폐하려는 정황이 드러난 논란의 대화가 밝혀진 까닭이다.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맞대결 3회 말 논란의 장면이 발생했다.
NC가 1대 0으로 앞선 3회 말 2사 1루 삼성 이재현의 타석에서 NC 선발 이재학의 2구째 속구에 주심은 ‘볼’을 외쳤다. 하지만, ABS는 이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했다.
올해 KBO가 도입한 ABS는 기계가 스트라이크·볼을 판정하고, 인이어를 낀 구심에게 결과를 전달한다. 판독 오류가 생길 때가 아니라면, 심판은 ABS의 판정 결과를 따라야 한다. 이재학의 2구째 공은 ABS가 확실한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다. KBO ABS 상황실 근무자도 기계의 스트라이크 콜을 들었다. 정황상 구심이 ABS의 스트라이크 콜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KBO는 각 구단에 ABS 판정을 확인할 수 있는 태블릿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 태블릿으로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확인할 때 시간 차이가 발생한다. NC는 이재학이 공 3개를 더 던진 후 2구째 공 판정과 관련해 심판진에게 항의했다.
문승훈 구심과 이민호 심판 조장 등 심판 4명이 모여 NC의 항의를 받아들일지 여부에 관해 논의했고, 곧 심판 조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민호 심판 조장은 “김지찬 선수가 도루할 때 투구한 공(이재학의 2구째)이 심판에게는 음성으로 볼로 전달됐다. 하지만, ABS 모니터를 확인한 결과 스트라이크로 판정됐다. NC에서 어필했지만, 규정상 다음 투구가 시작하기 전에 항의해야 한다. 어필 시효가 지나, 원심(볼)대로 진행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계 방송사 화면에 심판진이 판정 설명을 내리기 전 나눈 논란의 대화가 공개됐다. 4심 합의 과정 중 이민호 심판 조장이 문승훈 구심에게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하세요. 우리가 빠져나갈 건. 그것밖에 없는 거예요’라고 한 말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구심이 ABS 콜을 잘못 들어서 나온 오심을 ABS 오류 탓으로 돌리는 의도가 담긴 듯한 대화였다. 만약 이 의도가 사실이라면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 멀쩡한 ABS를 제물로 삼은 셈이다.
ABS 운영 매뉴얼에 따라 구심과 함께 ABS 인이어를 꼽는 3루심에게 정확히 재확인하거나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면 이 정도로 큰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오심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담긴 심판진이 대화가 그대로 드러나자 사건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1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KBO 관계자는 “해당 심판들에게 경위서를 받는 등 사실 확인에 힘쓸 것”이라며 “사실관계에 따라 징계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해당 오심 발생 전까지 1대 0으로 앞섰지만, 이후 5대 12로 역전패한 NC도 KBO에 유선으로 항의했다. ‘해당 내용에 대한 사과와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공문도 KBO에 보낼 예정이다.
특히 중계 화면상 오심 은폐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이민호 심판 조장은 중징계 그 이상을 피할 수 없는 분위기다. 사실상 이날 경기 승부까지 큰 영향을 끼친 행동이었기에 해당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경우 1군 무대 퇴출을 요구하는 여론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가뜩이나 야구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오랜 기간 받았던 KBO리그 심판진을 향한 신뢰가 급격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KBO 심판상’까지 받았던 28년 차 베테랑 심판 조장이 오심과 관련해 솔직한 고백과 반성이 아닌 은폐를 먼저 떠올렸다는 건 KBO로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될 전망이다.
김근한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