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화석기록, ‘역(逆) 도루’를 아시나요?
등록일 2012.01.19 00:00
글쓴이 방병수
조회 529
OSEN | 입력 2012.01.18 13:32 | 수정 2012.01.18 13:33 | 2010년 제65회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청주고와 부산고의 8강전에서는 보내기 번트로 2루에 진루했던 1루주자가 상대 수비진의 거짓말에 속아 다시 1루로 돌아오는 희귀한 장면이 벌어진 일이 있다. 5회말 부산고의 공격에서 번트안타로 1루에 출루했던 박종규가 후속타자의 희생번트로 2루에 무사히 안착하고도 파울볼이라는 적군의 말만 믿고 본래 있던 1루로 태연히 걸어 돌아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러한 주자의 기막힌 상황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청주고의 무관심 덕분에 박종규는 1루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태그가 되지 않아 무사할 수 있었지만, 기록처리를 놓고는 잠시 설왕설래해야 했다. 당시 타자의 희생번트 기록이 속절없이 날아가는 선으로 사건처리가 끝났지만, 2루로 진루했다가 다시 1루로 돌아간 주자의 기록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인지를 묻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1900년대 초반 정식기록으로 인정받았던 역방향 도루, 일명 \'역(逆) 도루\'에 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는데, 정확히 얘기하자면 주자가 거꾸로 돌아가 산 것은 맞지만 개별 플레이가 아닌 연계된 상황 속의 연속선상 플레이라는 점에서 설령 역도루 규정이 허용된다고 해도 도루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그림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역도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1900년대 초반 워싱턴 세네터즈팀에서 뛰었던 저어맨 세퍼라는 선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2루 도루 후, 3루에 주자가 있어 더 이상의 진루가 불가능하게 되자 1루로 역도루를 성공시키고, 잠시 뒤에는 비어있는 2루로 재차 도루를 감행, 한꺼번에 무려 3개의 도루를 얻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1900년대 초반(1905~1928)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선수로 이름을 남긴 타이 콥에 관한 일화도 숨은 역도루 비화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타이 콥은 데뷔 첫 해인 1905년을 제외(.240)하곤 1928년 은퇴하기 까지 3차례의 4할대 타율을 포함, 장장 23년간의 연속 3할대 타율과 3할 6푼대의 통산타율을 기록한 강타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통산 897도루에 홈스틸만도 54번이나 성공시킨 당대 호타준족의 대명사급 선수였다. 이처럼 빠른 발을 가졌던 타이 콥은 2루 진루 후 상대가 심기를 건드리자 3루가 아닌 1루쪽으로 역도루를 감행, 1루수의 정강이를 차고 들어가 부상을 입혔고, 이 사건을 계기로 \'경기 중 역도루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규칙개정이 이루어졌다\'는 뒷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주자가 역도루를 시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추측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개인기록을 늘리기 위한 통계적 목적이 되겠고, 두 번째는 수비수의 관심을 유도해 다른 주자의 진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비 혼란 유도를 목적으로 하는 시도가 되겠다. 타이 콥이 저질렀다는 비신사적인 의도를 담은 역도루는 특이한 경우다. 역도루가 없어진 배경은 그렇다 치고 규칙적으로는 어떻게 역도루를 막아 놓았을까? 규칙 7.01에는 \'주자가 정규로 다음 루로 진루할 권리를 얻고, 투수가 다음 투구자세에 들어가면 주자는 앞서 차지했던 루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이 규정을 어겨 주자가 역도루를 시도해 원래 있던 루로 돌아가면 그 주자는 규칙 7.08에 의해 수비방해로 아웃이 된다. 그 이유는 정규로 루를 점유한 주자가 수비를 혼란시키고 경기를 희롱할 목적으로 역주한 것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주자가 다음 루로 진루한 뒤 원래 있던 루로 돌아갔음에도 아웃이 되지 않는 경우는 주자 착각에 의한 돌발사태만을 예외로 인정해준다. 예를 들면 주자가 타자의 타구가 야수에게 직접 잡힌 것으로 착각한다거나, 앞서 예를 들었던 박종규(부산고)의 경우처럼 수비수들의 행동이나 말에 유인 당해 원래의 루로 돌아갔을 때뿐이다. 물론 돌아가는 도중에 태그 되면 아웃이다. 2005년 8월 23일, SK와 한화의 경기(문학구장)에서 한화의 김태균은 2루 도루에 성공하고도 상황을 오판, 1루쪽으로 돌아서다 태그 아웃되고 만 일이 있다. 1루주자였던 김태균은 도루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포수로부터 송구가 날아오지 않자, 순간적으로 타석에서 파울볼이 발생한 것으로 착각, 1루로 되돌아가려다 SK 2루수 정경배에게 걸려 아웃된 기억이다. 김태균의 당시 기록은 2루도루 인정 후, 오버런에 의한 주루사로 처리되었는데 이후 어떠한 이유로든 원래 있던 루 방향으로 떨어지면 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주자관련 규칙의 정신에 의거, 향후 비슷한 상황에서는 주자의 도루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1886년 최초로 도루에 관한 규칙이 공식화 된 이후, 1889년 기록지 양식에 도루기록 체크 항목이 추가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번의 손질을 거쳐 지금의 무관심진루와 도루를 가려 판단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오랜 규칙적 진화의 길을 걸어온 도루규칙 역사의 이면에는 이처럼 \'역도루\'라는 과도기적 괴물기록(?)이 잠시 머물다 간 흔적이 화석처럼 남아 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댓글

  • 장건 (2012.01.22 00:00)
  • 골프나 야구나 규칙은 어렵습니다....알면 알수록.......
  • 김성환 (2012.01.19 00:00)
  • ㅋㅋㅋㅋ... 재미있네요..

    그런데, [ 주자관련 규칙의 정신 ] 이 뭘까요 ?...ㅎㅎㅎ
    명색이 기록위원장인데......
  • 방병수 (2012.01.19 00:00)
  • 야구규칙 참 재미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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