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늘 잘 본 심판 누구였더라’ 들으면 최고의 찬사
등록일 2009.06.23 00:00
글쓴이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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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9.06.23 01:03 입력 “아웃” “세이프”. 짧은 순간 액션과 함께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에 수만 명의 희비가 엇갈린다. 프로야구 그라운드의 포청천, 심판은 아무리 잘해도 박수받기 힘들다. 반대로 단 한 번 실수에도 엄청난 비난을 뒤집어써야 하는 자리다. 때로는 공에 맞은 아픔을 참고 판정에 집중해야 하고, 감독들의 거친 항의에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감독들은 그라운드 안에서 뿐만 아니라 경기 종료 후 심판실까지 찾아와 항의하기도 한다. 심판들이 스스로 밝히는 판정의 원칙과 감독들의 어필 방식, 그라운드 안팎에서 선수단과 팬 사이에서 겪는 이들의 고충을 소개한다. 야구장에 심판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심판은 철저한 조연이지만 가장 긴박한 순간에 주연이 된다. 그러나 기계가 아닌 사람인 이상 오심은 나오게 마련이다. 오심에 대한 감독들의 항의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경기 전 음식 조심, 경기 중 오심 조심=심판들은 오심에 가장 민감하다. 요즘은 방송 기술과 인터넷 발달로 스트라이크-볼 판정, 홈에서 아웃-세이프 판정 등이 순식간에 공론화된다. 방송 카메라가 오심을 수차례 리플레이로 보여주면 팬들은 심판을 향해 온갖 욕설과 야유를 퍼붓는다. 조종규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은 “명확한 오심일 때는 이해하지만 심판이 순간적으로 실수할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은 리플레이를 그렇게 많이 보여주지 않는다. 잦은 리플레이로 심판들이 위축된다”고 덧붙였다. 최규순 심판은 “방송 카메라의 스트라이크존은 맞지 않다. 투수 바로 뒤에서 찍은 카메라를 보고 판정해야 한다. 투구판을 밟는 위치에 따라서도 존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오심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한다. 심판들은 경기 후 녹화 화면을 보면서 판정을 복기한다. 조 위원장은 “스스로 판정을 되짚어 보라고 한다. 심판의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 돌발 상황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위치도 배운다”고 말했다. 경기 전에는 음식을 가린다. 화장실은 5회가 끝난 후 단 한 번 갈 수 있기에 물도 잘 안 마신다. 연장 12회까지 계속되면 곤욕이다. 여름철에는 배탈을 염려해 찬 음식이나 쉽게 상하는 음식은 피한다. 구심을 보는 심판은 약 15㎏ 나가는 보호장비를 차고 3시간가량 서 있어야 한다. 한 경기 300개 안팎의 투구를 판정하고 나면 몸무게가 2㎏은 빠진다. 파울 타구에 쇄골·손등 등을 맞아 뼈에 금이 가기도 한다. ◆까다로운 김성근, 젠틀한 김경문=감독마다 어필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때로는 경기 흐름을 끊기 위해 의도적으로 항의하기도 한다. 베테랑 심판들은 “김성근 SK 감독이 제일 까다로운 반면 김경문 두산 감독과 선동열 삼성 감독이 깔끔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심판들의 처지에서 본 성향이다. 최규순 심판은 “김성근 감독은 논리 정연하게 따지기 때문에 가끔 말문이 막힐 때도 있다”고 말했다. 나광남 심판은 “김성근 감독은 논리적으로 끈질기게 항의한다. 설명을 신중하게 잘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도 점잖게 할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어필도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흥분한 목소리로 판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강하게 따진 뒤 깔끔하게 물러나는 편이다. 모 심판은 “사소한 것을 많이 항의한다. 한국 감독이라면 간단하게 한두 마디로 끝날 일인데 로이스터 감독과는 소통의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문 감독과 선 감독은 간단 명료하게 어필을 하고 심판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곧장 수긍한다. 젠틀한 스타일이다. 선 감독은 올 시즌 오심 피해를 자주 보면서 항의 횟수가 늘어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심판은 “팀 분위기 때문에 항의하러 나왔으니까 이해해 달라. 소리 좀 지르고 들어가겠다는 감독도 있다”고 소개했다. 조 위원장은 “경기가 끝나고 ‘오늘 심판이 누구였더라’라는 생각이 드는 경기가 최고”라고 말했다. 심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정도로 판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의미다. 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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