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남자도 애 낳는다는데 여자라고 프로야구 못하나
등록일 2009.04.07 00:00
글쓴이 장진연
조회 449
남자도 애 낳는다는데 여자라고 프로야구 못하나 WBC의 별들이 총출동,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한 4일. “야구하러 왔어요” 그녀의 대답은 짧고 단단했다. 미국 여자야구대표팀 출신의 한인선수 ‘제인 어’(19) 양이다. 그녀의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를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야구의 본 고장에서 대표선수까지 달고 뛰었을 때 한 것은 야구가 아니란 말인가. “야구만 하며 살고 싶었어요. 평소엔 소프트볼 하다가 시합 때만 하는 것 말고 프로무대에 서요. 다른 길은 생각할 수 없어요.” 앳된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한 소녀의 입에서 “야구는 내 인생”이란 말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 프로리그에서 뛰는 여자 야구선수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선 일라 본더스가 1998~2000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 뛴 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미국여자대표팀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소프트볼 선수 출신이다. 미국 내 아마추어 야구팀만 100여개 있을 뿐, 여자 선수들이 뛰는 프로리그는 미국이나 일본 역시 없다. 11세 때 야구에 빠져 작은 손으로 직구 130km/h대, 타율은 3할대를 올리는 그녀가 야구만 하고 살려면 남자선수들이 뛰는 ‘그들만의 리드’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양은 공을 잡은 그날부터 남자들과 경쟁해 왔고 줄곧 에이스였다. 야구를 시작한 지 2년 만인 2003년부터 3년 연속으로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크레스트 리틀리그 올스타로 선정됐고, 야구 명문 리버사이드 카운티 레드랜즈 고교 남자야구팀에서는 투수 겸 유격수로 맹활약했다. 시합을 하면 홍일점인데도 거꾸로 견제가 심하게 들어왔다. “빈볼을 많이 맞았어요. 여자선수한테 지면 창피해서 그랬나 봐요.” 속상할 법도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싱긋 웃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정강이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고도 엑스레이만 찍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가 의사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다. 남자아이들 틈에서 격한 운동하는 딸이 안쓰러워 아버지 어진(48) 씨가 “공부 잘해야 야구시켜준다”고 했더니 평점 4.21(만점 4.5)로 대학(UC산타바바라)에 장학생으로 합격한 그녀다. 그러던 어양의 인생행로를 바꾼 것은 2006 WBC 한국팀의 경기였다. “박찬호 선수는 잘 알고 있었지만 한국야구 수준은 그때 처음 알게 됐죠. 꼭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싶단 소망이 그때 생겼어요.” 우선 여자선수가 한국 프로구단에 입단이 가능한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지난 해 7월 아버지의 고향 경기도 일산에 짐을 풀고 KBO 이상일 총괄본부장부터 찾아갔다. 다행히 ‘여자선수라서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버지가 딸에게 “전국 유람이나 하자”고 제안했고 딸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따라나섰다. 이 용감ㆍ무모한 부녀는 대구 찍고 광주, 대전으로 프로구단을 찾아가 무작정 “시간 좀 내 달라”고 졸랐다. 다행히 KBO 단장회의에서 어양의 이름이 거론이 된 후라 각 구단들이 그녀를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 진입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어양의 실력을 테스트 해 본 기아 측 관계자는 “수비는 수준급이나 근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했고, 막판에 입단이 무산된 한 구단 코칭스태프는 “야구는 잘 합니다만…”이란 말로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어양 스스로 평가하는 자신의 실력은 “2군이라면 얼마든지 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 구단의 관심과 달리 실제로 입단 허가가 떨어진 곳은 아직 없다. 야구계 관계자인 지인조차 어양의 도전을 두고 “남자가 아기 낳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최초’이기에 가는 길이 평탄치 않을 거란 각오쯤은 이미 해 뒀다. 어양에게 “구단이 당신을 뽑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라고 물었더니 “꿈을 어떻게 포기하나?”란 답이 돌아왔다. “프로에서 뛰는 건 제 평생의 꿈이에요. 안 되면 되게 해야죠. 근력은 열심히 키우고 있고 다른 건 자신 있어요. 얼마 전 남자도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저도 꿈을 이룰 날이 오지 않겠어요?” 아직 유니폼을 입지 못했지만 “야구가 남자친구보다 더 좋다”며 눈을 빛내는 그 열정만큼은 이미 프로였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

댓글

  • 전문숙 (2009.04.08 00:00)
  • 꿈을 어떻게 포기하나?... 멋진 한국 여성입니다. 작년 일본에서 열린 3회 세계여자야구대회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미국 대표팀에 유격수로 활약하는 선수가 한국인이라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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